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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재밌다

생각정리안되는놈 2018. 12. 21. 03:59



나는 언제나 경계에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권력의 법칙을 습득하는 중학교 2학년 때에도 경계에 있었다. 지금이야 인싸니 아싸니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일찐과 이찐, 삼찐, 사찐 그리고 찐따로 나뉘었다. 한마디로 일찐에 붙으려는 인간들과 찐따로 나뉘었다. 그때도 난 그 중간에서 종이로 보드게임 만들고, 책상 탁구 대회 주최하고 살았다. 누가 봐도 개찐따 같은 행위지만 이상하게 나는 일찐도 찐따도 다 다가와 같이 놀았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에도 서 있다. 내 생각에 난 평균 남성보다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듯하다. 평균적인 남자의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 비율이 8:2정도라면 난 6:4정도 되는 것 같다. 지방과 근육 비율도 그렇고, 체모가 적은 것도 그렇고, 성욕이 적은 것도 그렇고. 사실 생긴 것도 중성적이다. 그래서 예전 20대 초반에 바가지 머리하고 다녔을 때(그땐 뱅 스타일이라고 간지였다)에는 별명이 ‘못생긴 여중생’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자 얼굴도 여자들이 매력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못생겼다 하는 그런 얼굴들을 좋아한다. 김고은, 장윤주, 같은. 희미한 얼굴들. 그런데 요즘은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돼서 그런가 몸에 털도 많이 나고 좋아하는 얼굴도 바뀌는 거 같고. 이런 걸 보면 인간은 철저하게 유전자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친구와 지인 사이의 경계로 사귄다. 친해질 것 같으면 거리를 두고, 거리를 두는 것 같으면 친해지려 노력하고. 언제 연락해도 괜찮을 정도의 사이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연락 와서 귀찮게 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듯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난 내 인생에 내게 소중한 불알친구 2명이면 친구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듯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친해지면 좋고 안 친해지면 어쩔 수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노력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

행동도 그렇다. 죽음의 경계가 있을 때 가장 재밌다. 탈락할 수 있을 때, 대박을 터뜨리거나 쪽박을 치거나 할 수 있을 때, 파격적이거나 논란적이거나 할 때. 이는 무엇 때문일까. 그냥 그렇다. 경계는 재밌다. 금기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재밌다. 이는 내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일까. 엄마가 ‘안 돼’라고 하지 않았기에 제멋대로 행동해왔기에 이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유전자에 각인된 어떤 요인 때문일까. 그렇다면 누구의 유전자일까. 아빠일까 엄마일까. 할아버지일까, 외할아버지일까. 이를 이해할 날이 오기는 할까.

(과거의 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