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켜진 내 몸 속의 타이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 안에서 타이머가 켜졌다. 째깍째깍. 지금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시간을 올라간다. 1,2,3,4,5,6.... 시분초보다 낮은 단위의 숫자까지 보이기 때문에 미친듯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획획획. 하지만 끝은 없다. 아니 모른다. 이 타이머가 울리는 시간, 끝을 알리는 버져가 울리는 데드라인은 모른다. 그저 미친듯이 숫자가 세어질 뿐이다.
언제 켜졌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채널A에 입사한 그 순간부터 켜진 것 같다. 백수일 때는 정해지지 않아 괴로웠지만 정해지지 않아 즐겁기도 했다. 아직 뭐든 될 수 있다는 근자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곳에 발을 디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이러다가 진짜 내가 생각했던 꿈을 못 이룰 수도 있겠는 걸?'
과연 여기서 내가 만들고 싶은 일반인 서바이벌을 만들 수 있을까. tvN같은 방송국에서도 손해임을 감수하면서 만드는 그런 프로그램을, 이 곳에서 만들 수 있을까.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타이머가 켜진다.
글이 우울해졌다. 빡친다. 우울한 글은 쓰기 싫다. 우울한 글을 쓰지 않으려면 내가 우울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우울하지 않으려면 기쁠 줄 알아야 한다. 기쁠 줄 알려면 뭘 해야할까. 요즘 내 최대 고민이다. 뭔소린지. 일기도 잘 못쓰겠다. 이런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내 글에 동의해줄 사람만은 읽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희망만을 품어본다. 나는 병신이니까! 우헤헤헤! 순간 글이 안 우울해졌다. 내가 병신임을 인정하니까 안 우울해졌다. 어쩌면 내가 요즘 우울했던 것은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난 병신인데, 날 천재로 생각해서, 나에게는 맞지 않는 회사라 생각해서, 한마디로 천재 코르셋에 갇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 탈 코르셋! 요즘 유행인 탈코를 하자! 천재 탈코! 난 병신이다! 우헤헤!
이제야 좀 맘에 든다. 이제야 이 일기를 발행할 마음이 든다. 역시 병신이 최고다! 병신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