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난 이제 늙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신 상태가 썩어 빠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노력할 의지가 없는 것을 '늙음'이라는 진부한 핑계로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늙던 말던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또한 '난 늙었어'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늙으면 젊잖아야지'라는 말에 반박하고 싶어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촐랑거렸다. 얼굴이 동안인 것도 한목하여 그래도 나름 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늙는 것은 내 주변 엄마들이었다.
먼저, 엄마의 엄마들이 늙어갔다. 칠순의 나이에도 혼자 시장에 나가 자기 몸만한 짐을 바퀴 달린 딸딸이에 싣고 지하철 안의 숨은 엘리베이터들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평지로만 갈 수 있는 길'을 만드셨던, 60년 동안 담배를 펴도 아무런 건강에 이상이 없으셨던 정정하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니, 사라졌다. 나의 할머니 뿐만이 아니다. 서른 즈음이 되니 친구들, 지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이제는 나의 조부모 중 혼자 남으신 외할머니마저 치매에 걸려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이제는 엄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단은 나에게 10만원을 꾸고 1년 째 안갚고 있는 친구였다. 어서 돈 갚으라고 닥달할겸 전화했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친구의 엄마가 심장암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30년간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살던 안하무인 친구였지만 엄마의 암 소식에 내게 흐느껴 울며 인생을 후회했다. 그 순간, 솔직히 친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 이거 자칫하다가는 우리 엄마도 죽을 수 있겠는데...?'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란 단어가 피부로 느껴졌다. 죽음의 줄서기에 나와 나의 엄마 아빠는 아직 줄서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그 차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늙지 않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내 주변은 늙고 있었고, 결국 나도 늙고 있었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을 때 늙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날 내가 늙었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난 결국 퇴사하지 못했다. 분명 내 직관과 판단에 의하면 퇴사만이 나의 행복을 위한 길이었는데 말이다. 아들이 방송국에 입사했다고 너무나 행복해하고 매주 목요일 11시마다 도시어부 화면 끝자락에 내 모습이 걸리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기쁨을 차마 걷어찰 수가 없었다. 부모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용기 없는 겁쟁이', '자신의 무능력함을 부모라는 핑계로 합리화하는 핑계충'이라고 욕했었는데, 나도 겁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늙고 겁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정했으니 이젠 늙은 겁쟁이로써의 살아갈 길을 찾으면 된다. 그 길은 바로 직장과 공채 준비의 병행이다.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쪼개서 공채 준비까지, 정확히 말하면 작문 준비까지 하자니 생각만해도 힘들 것 같다. 이 병행이 힘들어서 퇴사하려 했것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늙은 겁쟁이는 늙은 겁쟁이대로 살아가야지. 오직 이 길만이 늙은 겁쟁이가 엄마 아빠의 미소를 걷어차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