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시간
30살이 되니까 그전과는 달라진 게 있다.
손태호라는 영화에 할머니라는 조연들이 출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먼저 나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젊은 시절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들어준 할머니.
80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일을 나가시고 시식 코너에서 받아 온 종이컵도 꼭 가져와 한 번 더 쓰고 버리셨던 할머니.
그렇게 강인하던 할머니도 결국, 급성크롬병으로 돌아가셨다. 궤양성대장염.
약 6개월 간의 투병 생활을 끝으로 할머니는 또자 곁으로 날아가셨다. 물론 할머니도 또자도 서로 한 번도 본 적은 없어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내 인생에 하이라이트가 비춰진 게 아니다.
할머니가 보여준 반전 덕분(?)이었다. (참고로 사진에 나온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다. 외할머니는 후술된다)
사실 나의 친할머니는 우리 아빠의 친 엄마가 아니다. 정확한 용어로는 계모지만 계모라는 표현이 난 마음에 들지 않기에 길러준 엄마라고 말하고 싶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핏줄이 중요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아빠가 못 미더워서 였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물려주라던 유산을 모두 자신의 '핏줄'인 고씨 조카에게 모두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계모든 친모든 엄마라고 생각하고 보필하고 효도했던 우리 아빠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짝사랑도 아니고 짝엄마라니.
일방적 엄마.
이보다 슬픈 단어가 있을까.
'2018 유산전쟁'
난 이 사건을 이렇게 칭한다.
결국 조카와의 유산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50%를 받아오는 것으로 전쟁은 끝났다.
아빠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배신감으로 할머니에 대한 호칭을 할망구로 격하했다.
하지만 난 비록 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친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더라도 미워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할머니였고 날 사랑해준 할머니였다.
심지어 병상에 누워 투병하실 때도 병문안 온 내게 20만원 씩 손에 쥐어 주셨다.
이를 보고 친척들은 '너가 친 손자였으면 더 챙겨줬을 거다'라고 할머니를 욕했지만 내겐 20만원도 사랑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덩어리였다.
하여튼, 이런 할머니의 행보 때문에 내 인생에 할머니가 출연했다.
무엇보다 내가 이 '2018 유산전쟁'에서 느낀 것은 바로 '진정한 부부'였다.
할머니에게 배신당해 유산을 뺏긴 아빠. 그리고 이런 아빠를 한심하게 보지 않고 감싸 않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고 자기 때문에 힘들어할 엄마를 걱정하는 아빠.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진짜 부부를 느꼈다.
어렸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심한 부부 싸움이 끝난 뒤,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 있는 엄마 아빠를 화해시키기 위해 나섰던 적이 있다.
먼저 엄마에게 가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위로를 전했다.
그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빠한테 가봐. 아빠가 더 힘들거야."
하지만 아빠에게 가서 위로하자 아빠도 똑같이 말했다.
"엄마한테 가봐, 엄마가 더 힘들거야."
어쩌면 엄마 아빠에게 내가 귀찮은 존재여서 그럴 수도 있다. 중학생이 하는 위로가 뭐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하지만 상관없다. 난 그 일을 통해 '진짜 부부'에 대해 깨달았었으니까.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엄마 아빠는 똑같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한다.
나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아~ 나의 피앙세는 어디에 있는가!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다.
외할머니 이야기는 다음에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