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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도둑질
    카테고리 없음 2019. 5. 21. 23:50

    취직을 하고 나니, 내 지갑을 노리는 도둑이 생겼다. 조상님들 말대로 돈이 생기니 파리가 꼬였다. 그런데 지금 그 도둑이 내 길을 밟고 있다. 그것도 대놓고, 바로 옆에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마 내 소중한, 노예처럼 일해서 번 피 같은 돈을 훔쳐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뚜벅 뚜벅. 도둑과의 긴장되는 동행은 이내 <커피웍스>라는 카페에 들어가서야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순간, 도둑이 내 돈을 훔쳐가기 위해 움직였다. 

    “아들이 커피 사줄 거지?”

    “뭘 또 사달래? 이거이거 갑자기 도둑이 됐어”

    어제 가족들과의 회식 때부터 벌써 몇 번째 내 지갑을 노리는 지 모르겠다. 취직을 하고나니 대뜸 현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무려 23만원이나 나온 살치살 회식 때도 엄마라는 이름의 도둑은 내 지갑을 노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때마다

    “엄마. 효도는 돈으로 하는게 아니야. 행동으로 하는 거지. 자식에게 돈이라는 물질로 효도를 바라는 것은 진심어린 효도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네 아줌마들 모임에 나갔을 때 ‘호호, 이번에 우리 아들이 00 대기업에 취직해서 효도한다고 사준 거에요. 이런 거 하지 말래도 참. 호호. 효도하겠다며 주는거 있죠.호호’라고 자랑하기 위한 거짓 행복에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부러움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은 건강한 행복이 아니야. 그런 행동은 다른 엄마들로 하여금 집에 돌아가 ‘에휴, 엄마 친구 아들은 어디어디 취직해서 효도한다고 뭐 사줬다더라.’라고 자식들을 비교하며 또다른 사회 불화를 낳는 시발점일 뿐이야. 그런 거짓 행복보다 자신만의 취미와 노력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건강한 행복이지. 그러니까 엄마, 난 엄마의 행복을 위해 계산하지 않겠어.”

    라는 나의 완벽한 방어에 막혔다. 

     

    하지만 이번은 막을 수 없었다. 산책을 하러 나왔기 때문에 엄마는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고 나는 혹시 몰라 들고 나왔으니까. 또 같은 방어를 하기에는 이미 줄을 섰고, 뒤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젠장.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따뜻한 까페라떼 한 잔이요.”

    그래. 사실 뭐 괜찮다. 엄마한테 사는 커피가 돈이 아까우리. 그저 나 스스로 서른살이 넘은 이후 부모에게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고 다짐했을 뿐이었으니까. 내가 돈을 버는 이상 더이상 엄마 아빠한테 받지 말자고, 대신 주지도 않고 나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자고 다짐했었을 뿐이었으니까.(내 스스로는 이것을 디- 페어렌팅이라 명명했다. 디-톡스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뭐 커피 한 잔 정도야 괜찮았다. 상암에 놀러온 친구한테도 커피 한 잔 정도야 사지 않는가.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한 커피를 받아왔다. 근데 자리로 돌아오자 엄마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여보, 어서 집 앞 커피웍스로 나와. 지금 태호가 커피 쏜데. 호호”

    아빠한테 한 전화였다. 그리고 또 마침 걸려온 엄마 친구의 전화에 대고 말했다. “지금 태호가 커피 사준데서 잠깐 나왔지. 커피 얻어먹기 되게 힘들어~호호”. 이는 분명 내가 앞에서 말한 건강하지 못한 행복이다. 비교에 의한 행복. 아들이 사준 커피를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얻는 우월감으로 인한 건강하지 못한 행복. 하지만,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고마워 아들. 잘 마실게 호호”.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이렇게 싱글벙글한 사람이 또 있을까. 단 돈 4000원에 우리 엄마가 이렇게까지 행복해하다니. 그리고 이로인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다니. 분하지만 ‘이정도 가성비면 돈으로 효도할만 한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둑 맞을 때마다 도둑 맞는 사람도, 도둑질한 사람도 행복해지는 이상한 도둑질 덕분에, 퇴직하려다가 엄마 아빠 때문에 그만두지 못했던 날 이후로 이번에도 나는 디-페어렌팅에 실패했다. ‘부모를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것이야 말로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다’라는 내 바램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내게 있어 엄마 아빠는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는 내가 도둑질을 막지 못할 것 같다. 눈 뜨고 코베이게 생겼다. 하지만, 왠지 행복할 것 같다는 게 문제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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